상수아저씨 영화는 내게는 늘 그런 역할을 해왔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힐링. 치유제.
그리고 볼 때마다 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의.
유경도 아마 썩 좋아하지 않을 테고.
이전이나 지금이나 처음 겪는 남자들은 나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로 그 난해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나의 첫 홍상수인 <옥희의 영화>와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잊을 만하면 쏙쏙 극장 앞에 걸리는 아저씨의 영화들을 마주보며 역시 또 한 번의 본질적 질문을 끄집어 내고서는 어쩌면 그 맛에 괜히 만족스러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아저씨의 이번 영화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ㅡ내가 지금 가장 가까이 끼고 있는 사람에게 첫 홍상수였던ㅡ는 다시금 나와 영화, 그리고 나와 사람의 사이를 깊게 고민하게 해준 영화였다.
우스운 건 이미 한 달이나 지난 시점에서야 리뷰를 쓰게된 바람에 영화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도 딱히 없다는 것.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왜 아저씨 영화가 좋은지도 모르겠다는 점이다.
<옥희의 영화>의, <하하하>의 무엇이 나에게 홍상수 주기를 심어놨는지도.
아 그 찌질함인가. 김상경이, 이선균이, 결국엔 정재영마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 서투르면서도 능글맞고, 능글맞은데 또 순수해보이는 찌질함. 어쩌면 찌질미.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아 나를 조종하면서도 끝까지 숨기고 싶은 그 모습. 가끔은 술에 취해 난 니가 부끄럽지 않아, 하고 소리지르며 마음껏 세상 구경시켜주고 싶은 그 것.
어쩌면 그 이유가 하나.
홍상수 영화는 거기서 거기잖아. 늘 비슷하고.
꿈을, 어쩌면 상상을, 회상을, 아니면 그 아무 것도 아닌 무언가를 차용해서 그는 반복한다. 장면을, 대사를, 모습을.
그의 거의 모든 영화가 그래왔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 있어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의 반복은 심지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예 1부와 2부가 나뉘어 함춘수와 윤희정은 똑같은 만남을 반복한다.
사실은 이 영화의 배경이 아저씨가 자주 영화를 만드는 곳인 북촌 등지였다면
영화관을 나오기 무섭게 술을 마시러 찾아갈 마음이 굴뚝이었는데
하필이면 이번엔 수원이었다.
반나절 잠시 다녀와 어마어마한 교통체증만 겪게 했던 그 낭만이라곤 없는ㅡ내게ㅡ수원.
덕분에 감흥이 한결 꺾인 상태에서
두 번의 만남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건 꽤
고역이었다.
사실 영화가 흘러가며 김민희라는 배우 자체가 썩 매력적이지 않게 다가오기도 했고.
나는 홍상수아저씨 영화를 보며 늘 여배우를 유경에게 대입해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번 편으로 그마저도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아주 짧은 순간 내비친 고아성에게 대입해보고 만족하긴 했지만.
희정은 그냥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한 가지를 매일 조금씩 하자고 자신에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
어떻게 보면 내가 되고 싶은 사람. 평범해보이지만 강하고, 또 여린 사람.
그리고 함춘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실 1부와 2부의 차이를 만드는 건 희정이 아니라 함춘수인데ㅡ어느 것이 지금이고 어느 것이 그때인지, 나는 그냥 그것을 뒤와 앞으로 나누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모를 일이다ㅡ나는 두 명의 그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부에서의 함춘수는 외롭고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2부에서의 함춘수는 솔직하고 부끄럼이 없는 사람.
어느 함춘수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다, 만 나는 1부가 훨씬 자연스레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희정의 대사들이 더 좋기도 했고.
그런 의미에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기도 했고.
초밥집에서의 두 사람을 보고 약간은 알싸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결국 영화의 내용을 다 떠나서
그 날, 그러니까 영화를 본 날. 작은 다툼이 있었던 것은
온전히 내 잘못이었다는 것.
나는 여전히 뭔가를 잘못 짚고 있다는 것.
내가 닮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을 전혀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심지어 그때는 깨닫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번지듯 깨달았다.
그렇게,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것
그랬다.
틀리다. 그때는.
그렇다고 지금이 맞지도 않지만.
-
아주 오랜만에 쓴 리뷰였으니
한 번 더 읽지 않고 그냥 발행한다.
싸지름이 다시 살아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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