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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a/de cinéma

하와이언 레시피, ホメカアボ-イ

굳이 사설을 달자면,

하와이언 레시피ㅡ호노카아 보이는 또 한 번 나의 말랑말랑한 기대감을 져버린 영화였다.

물론 파라노이드 파크로 받은 쇼크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겠지만.

 

그냥 무작정 카모메 식당을 떠올렸던 것 같다.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에서부터.

 

심지어 첫 번째는 보다가 졸려서 내팽겨치고 잠이나 퍼질러 잤다.

두 번째 다시 재생을 누르며 마법처럼 영화가 달라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 마법을 이뤄졌다.

그래, 맞다. 그냥 헛소리다.

 

 

여자친구와 하와이를 찾았던 레오는 여행이 끝난 후 그녀와 이별했고, 6개월 뒤 그 여행에서 스친 고요한 마을에서 일을 하게 된다.

무표정에, 신경질적인 여자친구역으로 아오이 유우를 쓰다니, 그것도 그렇게 잠깐, 소스용으로. + 내 사랑 머스탱도.

꽤 겁 없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배경인 호노카아는 실제로 사탕수수를 재배했던 곳으로 일본인 주민의 비중이 높은 마을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 속 호노카아는 일본인 중에서도 특히, 노인이 많은 마을로 그려진다.

 

그들의 생활이 너무나 게으르면서도 평화로워서 마치 아마존의 원주민 부족을 보듯 이질적이고 신선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레오가 그 게으름에 동참하며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마을의 작은 영화관을 직장이자 거처로 삼아 생활하는 레오는 밀가루 배달을 하다 비와 만나게 되고, 그녀가 매일 차려주는 밥상을 얻어먹으며 친구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들의 특징은 그들이 세상을 각자의 눈으로, 그러나 모두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고, 나는 바로 그 포인트에 이끌려 그 영화들을 사랑해왔는데

하와이언 레시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명장면은 역시나 비가 달 무지개를 본 장면일 거다.

덕분에 봤다며 레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비.

도대체 그 감수성과 아이디어는 어디서 살 수 있단 말인가.

 

참, 비의 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순간 유바바(센과 치히로)인가?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소피(하울) 성우였던 모양이다. 나이에 비해 아주 여성스럽고 매력적인 목소리이다.

 

그런 목소리 덕분인지 비는 상당히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캐릭터로 그려진다.

첫만남에 레오에게 다짜고짜 고무총을 쏘질 않나, 바즈의 깁스 위에 똥을 그려놓질 않나.

심지어는 손자 같은 레오에게 이성적인 감정이라도 느낀 건지 질투심까지도 부끄럼없이 드러낸다.

이런 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하와이언 레시피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사랑스럽다.

그래서, 아, 사랑스러운 사람들은 죽으면 바람이 되는건가, 라는 결말을 짓게 됐다.

나도 바람이 되고 싶은데.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건 아마 매우 불가능한 일이겠지.

 

영화의 주된 등장인물은 거의가 노인들이다.

그 자체가 이 영화가 만남으로 시작돼 헤어짐으로 끝나는 영화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애초에 레오가 여자친구와 헤어지며 시작되는 영화이기도 하고.

 

짧은 만남과 헤어짐 사이의 공간과 시간을 채우는 건 밥이다.

나는 밥 먹는 장면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ㅡ물론 한국영화의ㅡ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너무도 평범한 일상의 단면이면서도, 아마 그 당연함에 담긴 묘한 위로감과 벅참 때문이리라.

물론 일본의 '밥'이라는 감성은 한국의 그것과 굉장히 다른 느낌이겠지만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공감대는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와이언 레시피 역시, 한 여인이 한 남자에게 밥을 먹이며, 사랑도 함께 먹이는 이야기니까.

아주 세세하면서도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레오와 비 두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 설정 자체가 레오=무신경한 철부지라는 캐릭터 설명이 되어주는 듯도 하다.

1년 후 다시 호노카아를 찾아서, 쫙 빼입은 모습으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그제서야 얘기하는 레오 말이다. 이놈.

 

마지막에 비가 롤케베츠를, 하필이면 그 음식을 잔뜩 만들어놓고 떠난 건

레오와 둘이 처음으로ㅡ어쩌면 마지막으로도ㅡ같이 만든 음식이기 때문이다.

 

훨씬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호노카아를,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고 떠나는 그 집을 다시 찾은 레오를 만났을 때  

비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떠한 강력한 메시지나 사건없이 시간따라 묵묵히 흘러가는 이 영화는 어쩌면 보면 볼수록, 또는 곱씹으면 곱씰을수록 마음 한 켠에 잔잔히 바람이 되어 불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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