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항상 똑같은 패턴에 항상 비슷한 인간들에, 같은 이야기다. 그 똑같은 것들로 꾸준히 영화를 짜내는 홍상수 감독이 매번 신기할 노릇이다. 내가 멍청이라서 맨날 '똑같다'라고 생각하는 걸거야. 내가 멍청이라, '짜낸다'는 저속한 표현밖에 쳐주지 못하는 걸거야. 하지만 정말 지겹다. 어쩔 수가 없다. 맞지 않는 것일뿐. 전세계가 극찬하고, 상받고, 언론과 평단이 인정하는 홍상수의 영화니까, 내가 똥멍청이라는 답말곤 모르겠다.
다 짜증나기때문에, 한 장면을 가지고 나를 좀 달래보는걸로 리뷰를 매꿔보려한다. (위사진) 구경남과 고순의 이 대화 장면이 없었다면, 안그래도 별볼일없는 나의 2시간이 아까워서 화가 났을 것 같다. 그나마 마지막이라도 달래줄만한 부분이 나와줘서 참 다행.
이 영화의 전체를 뒤흔드는 고순의 명대사가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는 만큼만 아는 척 해요" 부터, "사람마음을 잡기가 참 어렵죠". (한번밖에 안봐서 확실한진 모름)라고 고순이 내뱉는 순간, 2시간 내내 열통 터지고, 답답하던 속이 뻥 뚫렸고, 이 대사에 마음이 마냥 사로잡혔다. 근데, 더 충격적으로 좋았던 건 그 다음 구경남의 리액션이다. 오, 난 그 리액션을 보고 쓰러질 뻔 했다. 그 구질구질하던 구경남이. 의외의 리액션을 선사했을때 오는 황홀함이란.!!
고순 : 사람 마음을 잡기 참 어렵죠
구경남 : (엄청 쿨하게-절대 쿨한 척 아님-고순의 이야기가 뭔지 적확히 꿰뚫고, 모든 걸 통달한 사람마냥) "뭐.. 그렇죠.."
이건.. 이 영화를 처음부터 저 대사를 치는 순간까지 다 봐야 느낄 수 있는 황홀함이다. 고순과의 섹스 후 침대에 둘이 걸터 앉아, 구경남이 고순에게 쏴대는 주옥같은(반어법) 대사들과, 눈빛과, 찌질한 행동들을 봐서는 이렇게 쿨하고 단호박같은 리액션이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이 더 재밌었다. 이것이야 말로, '영화같아서'
1. 나에겐, 사실주의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과 그의 영화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2. 홍상수식 설정과 에피소드들의 연결로 무장된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거부감.
3. 근데 마지막, 구경남의 저런 식의 리액션은, 오히려 나에게 "영화처럼"느껴졌다.
4. 이건 정말 아이러니 아닌가?
3-1.오직 저 한 단락에서 나는 무너졌다.
3-2.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서, 그 순간만을 유일하게 "영화"처럼 느꼈다는 점이다.
5. 쓰다보니 엄청나게 의미부여하고 앉았는데, 그래, 쓰다보니 재밌긴 하다.
분명, 감독은 그냥 흘러가는대로, 그래, 저 상황에서 구경남은 저런 리액션이 자연스럽지, 하며 대사를 썼을 것이다. (영화를 마무리 지어야 하기도 했겠지) 그런데 이 똥멍청이 관객 하나는 거기에다 또 겁나게 의미부여하면서 좋아하고 앉았다. 오히려 구경남같은 캐릭터는, 그 상황에서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고순을 잡았을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경남은 그러지 않았다.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같았다. 구경남이라는 캐릭터가 유일하게 영화 속 멋진 주인공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였다.
영화를, 감독을, 잘 알지도 못하니까, 내가 느낀 것, 내가 아는 만큼만 아는 척 했다고밖에 할 변명이 없어서 미안스럽다. 우리선희를 보고서는, 아 웬만하면 홍상수 영화 안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신작도 아닌 작품을 보게해준 엘바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싫은것도 봐야지. 좋은것만 하고 살 순 없잖아.
그리고 영화 보는 내내 초록불켜고 브라운관 째려본 내 눈들아 수고했어
'carax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와이언 레시피 (Honokaa Boy, 2009) (6) | 2014.06.27 |
---|---|
<엘리펀트> 리뷰가 아닌, <엘리펀트>를 본 나에 대한 리뷰 (6) | 2014.06.23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치히로 찬양 (8) | 2014.04.26 |
왕가위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6) | 2014.04.13 |
스파이크 존즈, 허<Her> (4) | 2014.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