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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ax/영화

왕가위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심장이 마구마구 뛰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고, 머리가 하얘지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몰래 짝사랑 하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듯한 기분을, 난 왕가위의 영화를 마주할때 느낀다. 근 6년만에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다시 보며, 노라 존스의 the story로 시작하는 오프닝이 등장하자, 이 한결같은 떨림을 재차 확인하곤, 아 이건 병이다 싶었다. 좋다고 유난 떠는 것도, 별로인 점을 비판 하는 것도, 전체를 분석하거나 작은 부분을 드러내는 것 모두 나에게는 불가능이란 소리다. 결코 리뷰를 쓰기 싫어서 하는 변명이 아님을 밝힌다.


아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할까, 어떠한 형태의 리뷰를 완성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얼마전 만났던 장률 감독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왕가위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왕가위는 본인이 '작가주의'감독이라는 평가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는 쪽에 가깝다는, 본인은 철저히 상업영화 감독임을 강조한다는 내용이였다.


왕가위의 말이 맞다면, 그가 정말로 그렇게 영화를 찍고 있는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그의 영화를 볼때 느끼는 그 특유의 공통되는 감정들은 대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엘바의 리뷰를 인용할 필요가 있다. 엘바는 영화의 처음과 끝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나도 엘바가 비판하는 지점들이 어떤 것들인지 충분히 알고 있고, 오히려 더 심한 욕짓꺼리도 할 수 있다. 제레미 카페의 열쇠 꾸러미에 대한 이야기들, 우연이랍시곤 좀 우스운 구석이 다분한 코피 틀어막는 장면, 마치 엘리자베스의 로드무비를 위해 꾸며진 듯한 그들의 이별 설정, 전 남친네 아파트 위치(바라보면 훤히 보이는 길거리 옆) 등 등 등.. 그런데 그것들이 곧 왕가위다, 라고 하면 너무 성의없는 설명일까? 그 뻔한 설정들이 곧, 왕가위가 작가주의 감독이 아닌 이유이자, 상업영화 감독이자, 우리가 그의 영화를 애닳게 기다리는 이유일지 모른다. 왕가위, 하면 떠오르는 무수한 것들(시계, 핸드핼드, 슬로우모션, 불빛, 내레이션 등), 작위적인 연출과 오글거리는 대사가 형성하는 감성들이 주는 위로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 엘리자베스가 취해 바에 엎드려있을때, 제레미가 살짝 키스를 한 후 블루베리파이에 크림이 흘러내리는 장면을 집어 넣어버리는 연출.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엘리자베스가 먹던 파이를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전체 화면에 뜬금없이 파이의 단면이 나온다. 밑도 끝도 없는 파격이라면 파격, 유치함이라면 유치함, 극도의 작위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 부분에서 조그만 소름이 돋는다.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순간의 감성의 문제인데, 굳이 내 경우를 설명하자면, 왕가위는 블루베리 파이에 흰 크림이 사르르 녹아 내리는 장면으로 두 사람에게 시작될 사랑의 달콤함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것 역시 한 관객의 엄청나게 작위적인 해석이라면 해석이겠다.


훌쩍 서부로 떠나, 동쪽으로 다시 돌아온 '달라진' 엘리자베스가 다시 제레미의 카페를 찾은 어느날 밤. 뻔 하게 제레미는 엘리자베스에게 블루베리파이를 건네고, 뻔 하게 엘리자베스는 같은 각도로 바에 엎드리고(심지어 이번엔 술도 안마심, 그저 피곤해서 저러나 싶어하며), 뻔 하게 제레미는 엘리자베스에게 키스한다. 이 패턴으로 영화가 마무리 될 것임을 누구든 다 안다.


그런데 좋다. 그게 문제다.


특히 며칠 걸려 찍었다는, 마지막 키스신을 부감으로 촬영한 장면은 이 영화의 메인 스틸이자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다. 여기서 큰 감흥을 느껴지지 않는다면(이건 절대 비하발언이 아니다) 왕가위의 영화를 평생 보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 시간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본인은 6년 전, 학교에서 극장까지 겁나 뛰어 달려가 이틀 연속으로 혼자 구석에서 이 영화를 봤을때의 그때의 떨림을 또 한번 느낀 왕가위 빠순이임을 밝히며, 다시는 왕가위의 영화를 리뷰 리스트에 올리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