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ba/de cinéma

Prestige

앨바 2014. 12. 22. 12:47

 놀란에 대해 생각한다.

 올해 최대 화제작이었던 인터스텔라가 개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멘토가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다. 오래 전 TV에서 흘끔 봤던 터라 가물가물하여 일부러 극장에 찾아갔다. 불행히도 그 얼마 전ㅡ인터스텔라를 보기도 전, carax에 의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놀란의 단점을 알게된 참이었다.

 하필이면 그 때문에 보였던 것이다. 메멘토에서도. 그 단점이.

 

 그래서 궁금했다. 놀란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감독인가. 그래서 선택했다. 프레스티지를.

 

 carax가 말한 놀란의 단점ㅡ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인셉션에서, 또 인터스텔라에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부분ㅡ은 '질질 끄는 것'이었는데, 이게 내게 가히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는 다름 아닌, 위에서도 언급했듯 내가 인지하지 못하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듣고 나서야 아! 하고 깨닫게 되는 거다, 바보처럼.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인셉션을 매우매우 좋아한다. 처음 개봉했을 때에는 가히 센세이션이었던 데다가 마지막 씬 자체가 주는 그 알싸한, 불안한 행복감을, 볼 때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까지 감탄한다.

 그런데도 저 말에 공감하냐고? 당연하다. 어쩌면 굉장히 명백하게 보여지는 그의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뭐 놀란 감독이야 누가 뭐래도 훌륭한 감독임에는 틀림 없으니, 왜 그가 때로는 지루하게까지 느껴질 수도 있는ㅡ실제로 내 친구는 메멘토를 보며 꾸벅꾸벅 졸았다ㅡ전개방식을 꾸준히 고집하는 건지 밝혀내고 싶었다.

 

 그래서 프레스티지를 본 건데, 정작 프레스티지는 그간 놀란 감독의 여타 작품과는 너무 다른 모양새로 진행되어 다소 당황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내가 이전에 무려 스크린으로 접했던 이 영화에 대해 왜 별 기억이 남지 않았던거지, 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재미가 없어.

 재미가 없어.

 이건 좀 크리티컬하다.

 

 메멘토, 인셉션, 그리고 인터스텔라에까지 이어져온 그의 '질질' 기법은 마지막ㅡ혹은 중간중간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 결국엔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경험케하기 때문에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 그 정도는 끌어줘야 더 짜릿하지, 이런 느낌?

 

 근데 프레스티지엔 그 카타르시스가 없다.

 나름의 반전은 존재하지만 영 탐탁치가 않다.

 스칼렛 요한슨에, 크리스찬 베일에, 맨 중 맨 휴 잭맨까지 나오는데 섹시함이라곤 얼핏 찾아볼 수조차 없다. 하, 어쩌면 이게 제일 치명타일지도.

 

 

 이동진이 프레스티지에 대해 이렇게 얘길 했드랬다.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보여줄지'를 선택함에 있어 뛰어난 영화, 였다, 라고.

 당연히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지켜보았다. 놀란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보여줬을까. 사실 그 자체가 마술과도 같은 트릭이라 치밀함에 미소가 슬그머니 기어나왔다.

 

 아주 치밀하고 꼼꼼하게 플롯 라인을 구성하는 법. 이야기의 리듬을 잡았다 놓았다, 리듬과 밀당을 하는 너, 리듬밀당남. 하긴 영화감독에게 있어 음악적 감각은 참으로 중요한 역량이다. 때로 아무런 BGM이 없는 영화마저도. 어찌됐건 그에겐 한스 짐머가 있다 쳐도 감독 자체의 리듬감을 무시 못하는 게다.

 

 그의 영화 자체가 하나의 우주와도 같다는 느낌도 든다.

 [가 [나 [다 [라] 다] 나] 가] 와 같이 시작한 이야기를 거꾸로 감아 닫아가는 방식으로. 그간의 영화로 보아 본인만의 공식이 있는 것 같기도.

 

 어떻게 보면 여타 영화들보다 완성도 측면에선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생각도 든다. 적어도 메멘토보다는 단서들 하나하나 섬세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서툴고 성급한 만큼 메멘토가 더욱 매력적이긴 하지만.

 

 어찌됐건 프레스티지는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쉽다, 고 느껴지는 작품이다. 베드신이 없어서... 는 아니고, 영화 속 이야기와 비견해서 얘기하자면, 관객을 끌 만한 매력이 없는, 이미 다 봤던 트릭들이라 지지부진한 그런 시시한 마술을 보는 느낌이었다.

 

-

 

보다 힘들여서 쓰고 싶었는데, 아쉽게나마 이 정도로 마무리해본다.

연말이 지나기 전 얼른 시상식이나 해야지. (눈누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