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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나이트 :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의 시작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19. 00:29

  

참으로 경쾌한 오프닝.

이모션스의 best of my love와 보니엠의 써니가 흘러나오는 한 평범한 나이트클럽의 피크 타임.

그순간, 그곳에 머물고 있는 인물들을 쭉 훑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이건 좀 질투난다. 전세계인이 다 아는 노래가 꾸미는 오프닝이란!) 

 

 

 

그 속엔 야심 가득한 포르노 감독이 있고, 그 감독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여배우도 있다.

나이트 클럽 사장은 클럽을 휘젓고 다니고, 스테이지엔 음악에 맞춰 놀고 있는 죽순이 죽돌이들.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주문을 받으러 다니는 귀여운 롤러걸,

모두들 음악과 술, 친구에 취해 흥겨워보인다.

 

이 긴 롱테이크가 끝날 무렵, 카메라는 마지막으로 한 사람에게서 멈춘다. 

낮에는 세차장, 밤엔 나이트에서 주방 알바를 하는 열일곱살 풋내기 에디(마크 월버그)다.

 

영화의 초반, 에디가 자신의 방 안에 있는 전신거울 앞에 빤스차림으로 서서

'아뵤아뵤' 이소룡 흉내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카메라는 그의 방을 360도 턴 하며, 전체 벽면에 붙어있는 온갖 잡다한 영화 포스터들과 배우들의 얼굴을 유유히 훑는다.

그것만으로도 에디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 수 있다.

얼마나 영화 속 스타들을 동경하는지 압축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다.

곧이어 동네 누나와의 섹스 장면에서, 우리는 에디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

에디 : "암고나 비어 샤이닝 스딸~"

에디는, 단순 동경을 넘어 본인이 스타가 되고싶어 안달난, 그런 인물이다.

 

<부기나이트>는 기본적으로 이 '에디'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일단, 에디는 독특하다면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이트에서 주방일을 하다가, 틈틈이 성기를 꺼내 보여주고, 손님들에게 몇푼씩 받는 깨알 알바를 한다.

그게 돈이 되는 이유는 에디의 성기가 비범(?) 특출나기 때문이다.

그 소문을 듣고, 귀신같이 나이트 클럽을 찾은 포르노 감독 잭은 순식간에 에디를 섭외한다.

둘은 환상의 짝궁이였다. 역사상 이런 페르소나가 없을 정도로.

잭과 에디가 함께 만들어내는 포르노는 매번 대박을 치고, 몇 년동안 포르노 업계를 장악하는 역사를 쓴다. 돈도 많이 번다.

그러다 (당연한 수순으로) 잘나가던 에디는 연예인병에 걸려 감독을 배신하고,

한동안을 술과 약에 쩔어 방황하다가, 다시 감독을 찾아 예전 잘나가던 시절의 삶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그런 이야기가 바로 <부기 나이트>다.

 

(전혀) 어려운 영화도 아니고, 그리 대단한 것도 없지만

이 영화가 폴 토마스 앤더슨 초기작 중 꼽히는 이유는

아무래도 PTA의 '모두가 주인공'(내가 막 갖다 붙인 말) 설정이 잘 다져져 있는 작품이기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부기나이트>는 PTA가 <매그놀리아>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걸출한 연습장같은 작품이 아니였을까 싶다)

 

 

 

<부기나이트>의 주인공이 과연 에디(마크 월버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에디는 플롯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인물일 뿐이다.

영화의 그 어떤 포스터를 봐도, 에디의 단독 샷은 없을 뿐더러

위 포스터 역시, 에디는 무리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포스터다.

 

특히, 이 '모두가 주인공'인 설정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어쨌거나 <부기나이트>는 영화판 이야기라는 것이다.

감독을 필두로, 배우들, 스탭들, 제작자, 모두가 출연하고, 그들에게 저마다 사연과 스토리가 있다.

감독은 끊임없이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매너리즘에 빠질까봐 괴로워하며(설사 그것이 포르노일지라도.)

잘나가는 여배우는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포르노 스타라는 이유로 아들에게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은 약에 쩔은 아줌마,

누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바보 게이,

남들이 다 거지같이 옷입는다고 비난해도, 자기는 자기 옷 입은게 너무 마음에 드는 카우보이,

술과 마약에 빠져 이 세계에 들어왔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신의 잃어버린 순수성에 마음 아파하는 소녀...

이들은 결국 영화를 찍기 위해선 한 자리에 모여야만 했다.

인물이 모이고, 이야기들이 모이며, 영화는 다수의 주인공을 갖게 되었다.

 

에디가 다시 잭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다른 주인공들 역시 각각의 엔딩을 갖는다. 엄청난 변화가 있거나, 문제가 다 해결되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고 난 후,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마누라가 맨날 다른 남자하고 자는 걸 목격하는데 노이로제가 걸려 자살한 리틀 빌(조연출)의 초상화를 감독 잭의 집 벽에 걸어둠으로써,

엔딩 씨퀀스에서 카메라가 이들의 피날레를 훑을때, 자연스럽게 죽은 그의 모습도 볼 수 있게 해뒀다는 것.

 

이것은 다 무엇일까.

에디의 스펙타클한 스타 인생은 영화의 초점이 아니다. 

그냥 약간 '천박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좀 천박해서, 그들의 내면에 자리잡은 의외의 아픔때문에, 그들의 인생이 조금 더 진솔하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전하는.

 

애초에 에디의 물건(ㅋㅋㅋ)은 쇼킹한 소재였을 뿐,

이시대 포르노를 찍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

결국 저쪽동네 우리동네 거의 비슷비슷한 레파토리를 가진, 사람 사는 모습을 얘기하고싶었던 거 아닐까.

 

 

+ 그래도 마지막 장면을 넣어주는 PTA의 센스.

<분노의 주먹> 마지막 장면의 라모타를 떠올리며 웃었다. 유토킹투미? 아 이건 택시 트라이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