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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 <파라노이드 파크> 관람 포인트 셋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1. 23:40

 

 

 

주인공 알렉스는 뭔가를 끄적끄적 써내려간다. 알렉스가 끄적이는 글은 영화 속 내레이션으로 표현된다. 요 며칠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그로인해 느끼는 것들에 대하여 적는다. 글을 적는 와중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난 글 솜씨가 형편이 없다, 글을 못쓴다". 이 얘기에서 뜬금없이 저 얘기로 넘어가고, 저 얘기를 하다가 다시 아까 얘기가 튀어나오는, 툭 내뱉는 화법을 알렉스도 가지고 있다. 글솜씨가 형편없다기보다는 그만큼 복잡한 문제에 닥쳐있고, 생각의 정리가 잘 안되는 상태라는 것이 더 옳은 접근일 것이다.

 

- 이 영화에서 첫번째로 주목할 포인트는, 영화의 전개 방식이 곧 알렉스의 편지의 내용처럼 뒤죽박죽이라는 점이다. 감독은 알렉스의 복잡한 머릿 속과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영화의 '형식'에 반영한다. 그 형식을 따라 영화를 보면 좀 어지럽지만, 재밌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알렉스가 (본의아니게) 살인을 저지른 후, 있었던 일들을 이미 초반에 보여준다. 친구네 집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털썩 앉아 전화를 거는 장면이다. 따라서 관객은, 알렉스가 그렇게 끔찍한 일을 겪은 것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장면들을 본다. 이후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된 후,(관객들이 이 사건에 대해 대강 알아차릴 쯤) 초반에 보여줬던, 친구네 집에서 샤워를 하고 등등의 장면들을 다시 보여준다. 이때는, 초반에 보여줬던 장면들에서 몇 컷트가 더 추가된다. (알렉스가 옷을 갈아 입을때, 창문 밖에서 혹시 누가 자신을 볼까봐 갑자기 몸을 숙여 감추는 컷트들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알렉스가 편지를 적어가며 점점 사건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것처럼, 영화 역시, 후반부로 전개될수록 사건의 디테일을 찾아가는 것과 같았다.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전개라고나 할까.

 

<엘리펀트>나, 최근 <밀크>, <프라미스드 랜드>와 같은 영화들을 보면 구스 반 산트의 편집 템포는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파라노이드 파크>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차적 편집이 아닌,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서사 전개 방식을 택한 이상 구스 반 산트의 편집 진가는 더 크게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 두번째 포인트는 단연 알렉스 역을 맡은 배우 게이브 네빈스이다. 알렉스에 게이브 네빈스가 아닌 다른 배우의 얼굴을 넣어보기란 상상하기 어렵다. 여자보다 더 예쁜 외모와 머릿결에 탄탄한 몸, 그닥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모든 것을 다 집어 삼킬 것만같은 큰 눈망울은 몇몇 수식어만으론 묘사불가다. 탁월한 캐스팅이였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영화에 나왔을까 하고 검색하다보니, 단편영화 몇 개, 장편에도 작은 역할에 출연 후 (어떤 이유에선진 확실히 모르겠으나)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는 정보가 있다. 다른 연기가 꼭 보고싶은데.

 

- 마지막 한가지 더, 영화가 시작하면 한 명의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대학시절 도일이형이라고 불렀던, 크리스토퍼 도일. 왕가위의 촬영감독이다. 영화가 끝난 후 계속 머릿속에 맴돌던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를 고정시켜놓은 채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을 롱테이크로 촬영한 장면이다. 슬로우모션으로. 영화를 볼땐, 이게 뭔가? 하며 봤었더랬는데, 며칠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란 당장 그것이였다. 파라노이드 파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자,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그 곳. 그 공간에 대한 표현을 롱테이크 원샷으로 담아 냈다. 이건 '시'나 다름없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구스 반 산트와 도일이형의 합작이겠지.